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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소마츠가 아픈 xx xx 이야기

 

w. 와이케이 

(@Whyk33)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꿀꿀한 기분을 날려버리려고 본 하늘은 내 마음과도 같이 우중충한 빛을 띠고 있어서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멍하니 서 있다가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돌부리가 발에 채서 그것을 발로 찼다. 돌이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는 것을 담담히 보고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내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동생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아서, 홀로 들어간 파친코에서 동전 한 닢 남기지 않고 다 털려서 그런 것이리라. 가끔씩 찾아오는 울적하고 어두운 감정의 늪.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어두운 감정을 털어버리듯이 씨익 웃어본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갑자기 유쾌한 발상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 나는 정말로 환하게 웃었다.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동생들의 반응이 유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질질 끌리던 다리는 그제야 활기를 되찾았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소마츠가 아픈 척을 하는 이야기

  작전은 이랬다. 동생들에게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서 반응을 보고 장남님의 소중함에 대해서 잔뜩 어필을 할 생각이었다. 벌써부터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라마츠는 어떤 반응을 할까, 쵸로마츠는? 은근히 순수한 이치마츠와 대놓고 순수한 쥬시마츠는 곧바로 믿을 것 같다. 톳티는? 음, 톳티는 아마도 안 믿겠지. 하지만 이 오소마츠 님의 엄청난 연기 실력으로 넘어가게 만들 것이다.

  “다녀왔어!”

  들떠서 귀가 인사를 했지만 현관문이 드르륵, 닫히는 소리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아직 저녁노을이 지기 전이라 집 안이 조용했다. 아무도 없으면 재미없는데. 입이 부루퉁 튀어나와 신발을 벗는데 조용하게 기타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다. 종종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1. 카라마츠의 경우

  거실 안에서 홀로 기타 줄을 튕기고 있던 카라마츠가 나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다.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뚝 끊겨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형님, 왔는가.”
  “응. 카라마츠 있잖아.”

  웃음이 나오려는 얼굴을 가다듬고 심각한 표정을 한다. 평소의 촐랑거리던 행실을 때려치우고 조용히 카라마츠의 옆에 가서 앉자, 카라마츠가 의아한 듯 고개를 눈썹을 치켜떴다.

  “무슨 일이 있는가?”
  “있잖아…”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기 위해 일부러 말꼬리를 늘였다. 입을 달싹거리며 말할 듯 말 듯, 카라마츠를 애태우자 조바심이 났는지 카라마츠가 다시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러는 건가, 브라더.”

  넘어왔다. 이 정도면 카라마츠는 금방 속일 수 있을 것 같다. 입꼬리가 들썩이는 것을 숨기려고 코밑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 오늘 병원에 갔다 왔는데…”
  “그런데?”
  “암이래. 폐암 4기.”
  “……”
  “이야, 요즘 내가 밥을 잘 못 먹었잖아? 속도 안 좋다고 하고. 그래서 그냥 병원에 한번 가봤더니 그러더라고. 카라마츠 너는 담배 그만 피워라. 담배가 위험하다는 거 솔직히 누가 모르겠어? 그런데 내 일은 아니겠지, 했는데. 아하하…”
  “……”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한 덕분인지 대사가 술술 나왔다. 말을 하다 말고 슬쩍 카라마츠의 얼굴을 쳐다보니, 무얼 생각하는지 모를 무표정을 하고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침묵만 지키던 카라마츠가 입을 연 것은 얼마 후였다.

  “그래서?”
  “응?”
  “4기면 얼마나 심각한 거지? 치료는 할 수 있는 건가? 수술, 수술은 할 수 있는 정도겠지? 생존률은?”

  봇물 터지듯 카라마츠의 입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 하나를 할 때마다 가까워지던 얼굴은 점점 나와의 거리를 좁혀, 카라마츠의 얼굴이 코앞에 와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아, 아하하… 장난인데.”
  “뭐?”

  카라마츠의 눈빛이 돌변했다. 

  “거짓말이라구. 더 끌어보려고 했는데 카라마츠, 네가 너무 심각해서 더는 못하겠다. 미안합니다- 심심해서 장난 좀 쳐봤어요-”

  카라마츠가 내 멱살을 잡았다. 눈동자는 이글거리다 못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 이러다 한 대 맞겠네. 라고 생각하자마자 주먹이 날아와서 안면을 강타했다. 눈앞에 불똥이 튀었다.

  “때릴 것까지는 없잖아!”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사라지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지금 몹시 화가 나 있으니까.”

  분노에 찬, 잇새로 억눌린 말이 카라마츠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카라마츠에게 맞은 눈 밑이 얼얼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카라마츠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한 대 맞을 건 각오 하고 있었지만, 맞는다면 카라마츠가 아니라 쵸로마츠에게 맞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을 제일 처음 만나고 말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났다.

  “응, 미안.”

  카라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나를 노려봤다. 문 앞으로 향한 나는 다다미 문을 열려다가 다시 뒤를 돌았다.

  “아, 카라마츠. 담배는 끊을 수 있으면 끊도록 해.”
  “너나 끊어.”
  “그것도 그러네. 장남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는 건데. 나는 간다.”

  카라마츠의 대답을 듣지 않고 집을 나섰다. 다음은 쵸로마츠를 찾아볼까. 분명 레이카인지 뭔지 하는 아이돌의 뒤꽁무니나 쫓고 있겠지. 그나저나 눈 밑에 멍들면 어떡하지. 그럼 애들을 속이기 어려울 텐데. 그런 걱정만 하는 나였다.

 

  2. 쵸로마츠의 경우

  쵸로마츠가 자주 가는 라이브 클럽 앞에서 기다리다 보니 들뜬 표정으로 클럽에서 나오는 쵸로마츠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예상대로였다. 주인의 귀갓길을 반겨주는 개처럼 손을 흔들며 쵸로쨩, 하고 달려가려는 몸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발끝만 바라봤다. 이러고 있으면 쵸로마츠가 나를 알아채고 말을 걸어주겠지, 그런 생각에서였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쵸로마츠는 내 앞을 그저 스쳐 지나갔다. 냉정한 놈. 나쫓아가 쵸로마츠의 팔을 잡았다.

  “뭐야. 오소마츠 형. 여기서 뭐 해? 눈은 왜 그러고?”
  “아니, 눈은 그럴 일이 있었고. 쵸로마츠한테 할 말이 있어서…”
  “돈이라면 안 빌려줄 거야.”
 
  아니, 할 말이 있다고 했더니 바로 돈 이야기가 나오는 건 무슨 경우? 뭐, 다 내 업보인 것 같지만 너무하지 않냐고요, 쵸로마츠 씨.

  “아니 그런 거 아닌데… 여기서 하기는 조금 그런 이야기.”
  “도대체 뭐길래 그래? 그럼,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쵸로마츠는 짜증을 내면서도 내 팔을 잡아끌었다. 입에서는 툴툴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불만이 가득한 두 볼은 빵빵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안정권이라고 본다. 좀 전에 보고 나온 레이카쨩의 라이브 때문인지 쵸로마츠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인적이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앞장서 걷고 있던 쵸로마츠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빨리 할 말이나 해, 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크흠, 목을 가다듬었다.

  “있잖아, 그게…”
  “빨리 끝내주면 좋겠는데. 빨리 집에 가서 오늘 산 냐쨩 굿즈 보고 싶으니까.”
 
  치밀하고도 냉정한 새끼. 역시 자상한 카라마츠보다는 깐깐한 상대다.

  “아니, 내가 요새 밥도 잘 못 먹고, 속도 답답하다고 그랬잖아?”
  “운동을 안 하니까 그러지. 밥은 처먹을 대로 처먹고 운동도 안 하고 똥만 싸서 배출하니 그게 배출이 되겠냐?”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쵸로마츠, 너는 원래 이런 놈이지.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나, 폐암 4기래.”
  “하?”

  쵸로마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믿지 않는 것 같은 눈치였다. 쵸로마츠에게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는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대사를 준비한다.

  “수술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나 봐. 생존율이 4.4%라니 말 다 했지. 쵸로쨩, 너는 담배 많이 피우지 말도록 해. 너는 평소에 많이 안 피워도 가끔씩 화나는 일 있으면 많이 피우니까.”
  “그게 지금인 것 같은데? 그런 거짓말은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당장 그만둬.”
  “…거짓말 아닌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쵸로마츠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더니 쵸로마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병원 같이 가보자.”
  “…에?”
  “오소마츠 형한테 폐암이라고 진단한 그 썩을 병원에 다시 가보자고. 어디서 돌팔이가 약을 팔고 있어. 오소마츠 형이 폐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그래. 다시 가서 검사받게 따라와.”

  쵸로마츠가 내 팔목을 잡더니 질질 끌었다. 기쁘기는 하지만 병원에 갈 수는 없다. 쵸로마츠는 여기까지인가.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뻥이지롱.”
  “뭐?”
  “…뻥이라고. 너희가 나랑 너무 안 놀아줘서 나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드는 캠페인이라고나 할까?”
  “미친 새끼.”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 쵸로마츠가 바닥에 침을 뱉더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쵸로마츠의 등 뒤로 소리쳤다.

  “쵸로마츠- 네가 나를 걱정해줘서 횽아 감동했어! 담배는 몸에 안 좋은 거니까 꼭 끊도록 해!”
 
  내 말이 들렸을 텐데도 쵸로마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어지간히도 화가 났나 보다. 사라져가는 쵸로마츠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머니 속에 찔러 놓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3.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경우

  슬슬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강변을 걷다 보니, 캐치볼을 하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쥬시마츠가 던진 공을 부산스럽게 주우러 다니는 이치마츠의 모습이라고 할까. 나는 슬며시 두 명에게 접근했다. 쥬시마츠가 먼저 나를 알아채고 나에게 돌진해온다. 

  “오소마츠 형아다!”
  “그래, 오소마츠 형아이시다.”
  “오소마츠 형을 여기서 보는 것은 드무네. 웬일? 그리고 눈은 왜 그래?”

  이치마츠가 내 눈을 가리켜서 멋쩍게 웃으며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에 닿은 눈 밑이 아릿아릿하다. 카라마츠가 고릴라 같은 힘으로 인정사정없이 때렸으니 지금은 멍이 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냥, 넘어졌어.”
  “바보네.”
  “오소마츠 형은 바보임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키득거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가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냈다.

  “저기, 이치마츠, 쥬시마츠.”
  “응?”
  “뭠까?”
  “할 말이 있는데.”
  “오소마츠 형이 할 말이 있다고 하니까 무섭슴다-”
  “그러네, 무서운데… 뭔데 그래?”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있잖아, 이 횽아가 아프다네?”
  “어디가 아픈데? 눈은 조금 아파 보이네.”
  “눈 말고. 여기가.”

  폐가 어디였지. 대충 손가락을 들어 가슴 아래쪽을 가리킨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폐암이래. 4기.”
  “폐암 4기면 심각한 검까?”
  “와, 완전히 심각한 거 아니야?”

  이치마츠의 흔들린 눈동자를 본 쥬시마츠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치마츠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장난은 아니지?”
  “…아무리 나라도 이런 걸로 장난하겠어?”

  사실 장난입니다. 미안합니다. 순순히 믿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니 가슴속에 죄책감이 피어올랐다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씁쓸하다.

  “부, 부모님한테 말했어? 병원은 가본 거지? 하긴 병원에 안 갔으면 몰랐겠네. 어떡해? 수술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음, 부모님한테는 아직 못 말했고. 수술은… 받아도 별로 가망이 없다고나 해야 할까.”

  이치마츠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형제들 모두가 어둠마츠라고 놀려대긴 하지만 사실 이치마츠는 우리 중에 가장 마음이 여린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어깨를 토닥이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않슴까. 빨리 부모님한테 말씀드리고 수술을 받아야 함다. 아무리 가망이 없다고 해도 수술은 받아야 하지 않겠슴까.”

  쥬시마츠치고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이십 몇 년간 등골만 빼먹은 자식인데 엄청난 목돈이 드는 수술비까지 손을 벌리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조금 죄책감이 든다고나 할까. 그리고 거짓말이라서 사실은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나 할까.”
  “…뭐?”
  “오소마츠 형?”
  “이야, 너희가 너무 심각해서 더 이상은 못하겠네. 사실 이 눈도 카라마츠한테 똑같은 거짓말 했다가 맞은 거걸랑. 그냥 장난이었어. 미안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기가 막힌 듯 입을 떠억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가자. 쥬시마츠.”
  “……”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치마츠가 몸을 돌리더니 내 쪽으로 뛰어와 내 멱살을 잡았다.

  “쿠소마츠가 때린 곳을 또 때리기는 싫으니까 놔두는 건데. 또 그런 장난치면 뒤진다. 쿠소 장남.”
  “아, 아하하… 무서워라.”
 
  어색하게 웃자 이치마츠가 다시 이를 갈더니 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거친 손길로 잡혀 있던 목 부근이 아파서 기침이 나왔다. 이치마츠는 다시 나를 노려보더니 쥬시마츠의 손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 토도마츠만 남았고 이 무의미한 장난은 곧 끝을 맞이한다. 조금 질려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피어올랐지만 집에 돌아가면 마주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 형제들을 떠올리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5. 토도마츠의 경우

  운이 좋게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 토도마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 다른 데서 운이 따라주지 않으니 이런 곳에서라도 운이 좀 따라줘야지 얼추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운이 따라주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이 다시 나의 의욕을 고취시켰다.

  “어라, 오소마츠 형 아니야? 어디 갔다가 와? 파친코? 모습을 보아하니 오늘도 왕창 털렸나 보네-”
 
  내 모습을 보자마자 쏟아내듯 말을 내뱉는 톳티 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평정심을 유지하자, 평정심. 

  “파친코에서 털린 건 맞는데, 그것 때문에 이런 건 아닌데…”
  “그럼 뭐? 경마? 경마도 털렸나 보네. 역시 우리 집 쓰레기 장남. 눈은 왜 그래? 어디서 맞았어?”
  “눈은 뭐, 그럴 일이 있어서. 있잖아, 톳티. 나는 쓰레기 장남이니까 없어도 되겠지?”

  슬쩍 내뱉은 말에 토도마츠가 난처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삐진 거? 속도 좁아서 어떡한대.”
  “아니, 삐진 거 아니고 진짜로. 진짜 내가 없어져도 괜찮을 거 아니야.”

  내가 담담히 내뱉는 말이 어지간히도 톳티의 예상과는 영 달랐나 보다. 톳티는 무슨 단어를 내뱉어야 할 것인지 고르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다. 토도마츠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나 죽을지도 몰라.”
  “…뭐?”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폐암이래. 폐암 4기.”
  “거짓말하지 마.”
  “…토도마츠, 네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별 수 없지만 사실이 그런 걸-”

  토도마츠가 미심쩍다는 듯이 나를 노려봤다. 역시 쉽지 않은 상대이니 나도 강수를 둬야했다.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내려보던 나는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토도마츠도 따라 웃었다. 장난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섹스도 못해보고 죽을 수는 없는데.”
  “장난 아니었어? 그만해. 재미없어.”
  “너 재미있으라고 하는 소리 아닌데?”
 
  토도마츠가 재밌으라고 하는 소리라기보다는 내가 재밌으라고 하는 소리. 하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라서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자 다시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없어도 형들 말 잘 듣고.”
  “뭐야? 거짓말이지? 재미없으니까 그만하라고!”

  톳티가 와락 내 멱살을 잡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생각보다는 손쉽게 넘어왔다. 아무리 드라이몬스터여도 막내는 막내다. 토도마츠의 앙다문 입술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왜 웃는 거야?! 거짓말이지? 빨리 거짓말이라고 말하라고!”
  “슬슬 질리네.”
  “뭐가 질린다는 거야?”
 
  이 장난이. 모든 것이 질리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종이를 꺼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구겨져 있던 그 종이를 반듯하게 펴서 원래의 모양으로 만든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떨렸다.

  씨발, 어떻게 말하냐고. 조용히 투덜거리자 토도마츠가 얼굴을 들이밀고 뭔데 그러냐고 자꾸 묻는다. 싱숭생숭했다. 물론 내가 싱숭생숭한 이유는 파친코에서 털려서도, 동생들이 놀아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토도마츠, 그냥 집에 가라.”
  “오, 오소마츠 형은?”

  흘러내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토도마츠가 물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냥, 지금은 별로 집에 가고 싶지가 않네.”
 
  나에게서 풍기는 심각한 분위기를 알아챈 듯, 토도마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뒤를 돌았다. 그대로 몇 걸음 걷더니 다시 몸을 돌린다. 나를 보며 머뭇거리던 토도마츠가 걸어와 나를 안아주었다. 따뜻하네. 무심코 중얼거리자, 바보. 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오늘 바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은 건지. 

  “집에 빨리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외치며 토도마츠는 사라져갔다. 어느새 길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토도마츠가 사라진 방향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터벅터벅 내 발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하염없이 길을 걷다 보니 아까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만났던 강변에 도착했다. 우뚝 멈춰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토도마츠와 있을 때 펴놨건만 다시 주머니에 넣어서 그런지 도로 구깃구깃해졌다. 그것을 다시 펴서 바라본다. 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어만 가득했다. 그래도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오늘 낮부터 나를 괴롭히던 원흉.

  거짓으로 숨겨서 나의 상태를 고백한 것은 정말로 별 의미 없는 장난이었다. 내가 평소에 하는 것처럼 그런 시시껄렁한 종류의 장난. 심각하게 말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기도 했고, 순수하게 동생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반향이 어찌 되든 크게 상관없기도 했다. 이미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토도마츠가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집에 돌아가 형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듣고 나를 욕하고 있겠지. 아니면 진짜일 거라며 다른 네 명을 설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까만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내가 살 확률은 저 하늘에서 별을 딸 확률. 씁쓸하게 웃고 손에 들린 종이를 잘게 찢어발겼다. 그리고 손을 놓자 바람을 타고 종잇조각들이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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