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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

w. 여신 

(@shin9400) 

 

 

 

만약 우리들이 형의 변화를 알아차렸다면 달랐을까. 


1.

언제부터인가 잠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어젯밤 너무 늦게 잤었나? 그냥 사소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오소마츠형 "
"엉?"
"요즘 너무 늦게 일어나는 거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있잖~?."
"정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3일 연속 12시간 이상은 너무하잖아!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씩씩거리며 화를 내면서도 걱정한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만약 그냥 웃어넘기지 않았다면 달랐을까. 그랬으면 조금은 더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까. 


2. 

일어나도 일어나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구분도 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딱히 문제가 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꿈이든 현실이든 어디든 녀석들 있었고 부모님도 있다. 친구들도 있다. 꿈이든 현실이든 나에겐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냥 지냈다. 아무리 꿈과 현실이 헷갈려도 결국 녀석들은 나이면서 나는 녀석들이니까 어디서든 우리는 여섯이서  하나니까. 어디서든 우리는 영원할 거라고 영원히 함께라고 생각했다. 그건 나의 자만이었다.  
 
“형, 형!!! 코피난다요!!!”
“응,에? 진짜네!”
“휴지!휴지!”
“고마워 쥬시마츠~.”

싸울 때도 잘 흐르지 않던 코피가 흘러내렸다.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코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쥬시마츠가 가져다준 휴지로 막아보았지만 멈출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멈추긴 개뿔 오히려 흘러내리지 못해 안달 난 듯 막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어라? 

"오소마츠 형!!"
“형님!?”
“형!?”

갑자기 많은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서일까 어지러워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녀석들의 발이 보이자 그제야 나는 내가 넘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 순간은 지금 꿈인 걸까. 이 순간이 모두 꿈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녀석들 목소리는 꼭 노이즈라도 낀 듯 점점 내게서 멀어졌다.


3.

“형, 오소마츠 형, 정신이 들어? 나 누군지 알아?”
“으, 쵸로마츠? 어디야 여기.”
“응. 나 쵸로마츠 알아보네, 다행이다. 여기 병원 응급실이야.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 미안~”

씩씩거리며 화내는 듯 걱정하는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쵸로마츠는 조금 더 누워있으라고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 갈 준비를 했다. 집 갈 준비라고 해도 딱히 없지만. 조금 더 누워있는다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고 우선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공간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형님”

집에 간다는 나를 쵸로마츠가 말리던 중 카라마츠가 왔다. 매점에 다녀온 건지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카라마츠 글쎄 쵸로마츠가 나 집에 못 가게 하잖아! 좀 말려봐!”
“형님 검사해보고 집에 가는 게 어떤가, 코피도 꽤 많이 흘렸고 무슨 문제라도있으면...”
“하? 너까지?! 검사해도 똑같아!”
“형!”
“형님!”

나를 부르는 애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집을 향해 뛰었다. 병원이 안 보일 때쯤 멈춰 섰다. 뒤돌아봐도 애들이 따라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 심호흡을 하고는 걸었다. 사실상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나와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 기분이 병원에 있기 싫었을 뿐, 그리고 그저 불안했을 뿐 그 외 다른 이유는 크게 없었다. 


-


“엄마, 오늘 시간 있어요?”
“응? 무슨 일이니?”
“부탁 좀 하려구~”
“어머, 미리 말하지만 니트에게 줄 돈은 없단다~”
“아니야!”

엄마에게 단둘이서 병원에 가자고 부탁하였다. 확인 차 가는 거였다. 아무것도 문제없다는 확인을 받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정상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완치 확률은 60% 미만 입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겁니까. 증상이 없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요.”
의사의 말을 듣고 엄마의 표정을 살피자 사색이 되었다. 
“선생님 증, 증상이라면 어떤...?”
“증상은 빈혈, 피로감이 심해지고 또 코피를 자주 흘리는 것 또한 증상 일부인데 정말 없습니까?”
“아들이 저번 주에 코피를 흘리고 병원에 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번주 밖에 안됐어요 선생님”
“정말 저번주 한 번뿐인가요? 이 정도면 꽤 흘린 적 많았을 겁니다.”

의사의 말처럼 그때뿐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한 번씩 코피를 흘린 적이 있다. 하지만 딱히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분명 그랬다. 그것보다 왜 하필 나인지 궁금했다. 정말로 일찍왔으면 달랐을까. 

“치료는 많이 고통스러울 겁니다. 본인 그리고 가족들까지. 온 정성을 쏟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저희 아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의사선생님에게 고개 숙이는 엄마를 보며, 병원복을 입고 있는 나를 거울을 보고 깨달았다. 이건 절대 꿈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4.

치료를 위해 입원한 지 반년이 지났다. 치료가 고통스러울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능한 한 버티자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직은 모두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지 못한 것도 많으니까. 하지만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암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오소마츠 오늘은 어때 괜찮니...?"
"..."
"밥은 먹어야지"
"안 넘어가. 그만 집에, 욱,우엑." 
"오소마츠!!"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무너져갔다. 
매일 밤 오늘이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못뜨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6명이 즐겁게 놀던 날들을 꿈꿨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만 달라진 공간에 목 끝까지 차오르는 외로움과 울렁거림에 잠에서 깨어난다.


-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고 희망을 가져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 안의 암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남아서 나를 죽이고 있다. 좌절하지 말고 이겨내자 라는 생각보다 이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다. 더는 방법 또한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해봤자 더욱 고통스러울 뿐 억지로 생명을 불어넣어 봤자 그만큼 더 빠져나올 뿐이니까.

"다들... 보고 싶어"
"오늘은 다들 자고 가면 좋겠어"

 나는 마지막까지 제멋대로에 이기적이다. 누구보다 변화와 외로움을 싫어해 내 행동에 변할 가족들을 보기 싫어 자신을 외면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달라질 분위기가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그저 모두가 내 곁에 평소처럼 있어주길 원했다. 남아있을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만 생각했다. 
모두의 자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1년 전만 해도 바로 옆에서 보던 모습들을  이젠 기억 속에도 흐릿해져 갔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효도 좀 하고 6쌍둥이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가족으로 다시 만나고 싶어'

주변에서 자고있는 모두의 숨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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